해외에서 44살에 처음으로 '내가 평생 하고싶은 일'을 찾았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7년 동안 영어강사를 하면서 정말 "이거 말고 다른 일은 없나?"라는 질문을 동료들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영어를 좋아했고 영문과를 나와 영어강사를 했지만, 나는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에너지를 쉽게 잃는 사람이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 교재를 가지고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싫었고,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위에서 내려오는 말도 안 되는 지침들까지….

어렸을 때는 26살이 되면 내가 바라던 꿈의 직장을 가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내 인생의 방향을 잡은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26살은커녕 해외에서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도 "난 뭘 하지?"를 매번 고민했다. 내가 뭘 잘하는지, 막상 외국에 와 보니 내 영어는 정말 초등학생 수준 같았고 발음도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었다. 아, 절망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 서양 남편만 믿고 이렇게 타지에 와서 외롭게 아이들을 키우는데, 남편은 내 영어를 구박하고 "넌 뭘 잘하니?"라는 투의 말을 했다. 그때 나는 '내가 정말 성공하고야 만다. 그리고 이혼한다.' 이런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둘째가 어렸고 폴리텍은 학비도 비싸서 등록하지 못했다. 대신 온라인 폴리텍에 등록해 고민 끝에 비즈니스 회계를 공부했다. 아무튼 이 공부 이야기도 할 말이 많지만, 그건 다음에. 정말 포기할까 하며 열 번도 넘게 책을 덮었지만 결국 졸업했고, 취업도 했다.

그리고 나는 취업한 이곳이 정말 좋다.

매번 수업을 해야 하루가 지나가고, 하루의 끝에는 에너지가 모두 소진돼 기진맥진하던 영어강사가 아니라, 내 부족한 영어를 오히려 보완해 줄 수 있는 페이먼트 팀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는 뉴질랜드 공기업이다.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그래서 실수를 해도 너무 위축되지 않을 수 있다. ㅎㅎ 물론 그래서 좋다는 건 아니고, 이제야 내가 좋아하며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게 너무 좋다.

44세에 내가 원하던 직업을 찾았다. 막연히 26살쯤 이뤘을 거라 생각했던 꿈을 18년이나 늦게 이룬 셈이다.

사실 위에서도 슬쩍 언급했지만, 이 직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낮은 자존감과 남편의 멸시 속에서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또 정말 좋은 점은 한국에서는 어디 중년의 아줌마를 이렇게 채용해 주겠느냐는 것이다. 외국은 나이를 보지 않는다. 그건 불법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 직장은 워라밸도 보장한다. 일주일에 세 번은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2주에 한 번은 하루를 쉴 수도 있다. 정해진 근무 시간만 채우면 된다. 또 공기업이라 정부가 일부러 이민자들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주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회사들보다 나 같은 이민자들이 많은 편이다.

지금은 직장 생활 5년 차다. 처음에는 템프(임시직)로 시작했고, 그다음은 애드민, 그리고 지금은 페이먼트 팀에서 2년 넘게 일하며 Level 2가 되었다. 나름 내가 맡은 스킬 분야에서는 실력도 꽤 인정받고 있고, 지금도 새로운 스킬을 배우는 중이다.

이곳은 절대 매너리즘에 빠질 수 없는 곳이다. 항상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더 실력 있는 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정말 바쁜 곳이다. 고객들이 콜센터에 전화하는 이유의 80%가 페이먼트 관련 문의다. 지급을 재촉하는 고객들의 질문과 불만을 해결해야 하고, 모든 퍼포먼스가 숫자로 평가되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정신없이 바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런 바쁜 하루가 좋다.

사실 회사 욕할 것도 많다. 그건 다음에….

아무튼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제2의 꿈을 이루고 싶어서다.

나는 블로거로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는 허황된 꿈도 꾸는 사람이고, 내 마음속에 담아 둔 수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이민자로서 평론가도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다.

아직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성과는 크지 않지만, 이렇게 하나씩 시작하며 내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다음 이전